영화 '트루먼 쇼'에서 벌어지는 조작극과 같은 일들이 현실 속에서도 가득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의 관점에서 영국의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맹목적인 무신론을 펼쳐 대중을 호도하고 있으며,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장광설일 뿐이다. 이른바 자기계발서 열풍과 고유의 무슨 기법이니 하는 말들은 모두 그 효용에 비해 터무니없는 대가를 요구하는 사기 행위일 경우가 더 많다고 질타한다. 뉴스와 다큐멘터리, 리얼리티 쇼 등도 그의 블러프 범주를 피해가지 못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해답은 단 하나다. 실존적 체험이야말로 인간의 단 한 번뿐인 인생에 그만의 독특한 취향과 열정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 판 마당극과 같은 뤼츠의 재담을 따라가다 보면 주어진 각본에 맞춰진, 인생이란 연극 무대에서 살짝 비켜나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2. <프랑스 엄마처럼>
저 자
- 여러 아이들의 어머니이자 긍정심리학 전문가인 이자벨 파요, 오드리 아쿤
한줄요약 책소개
- 프랑스식 긍정교육법이 담겨져 있는 책
제아무리 슈퍼우먼이라 할지라도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건 정말 힘든 일이다.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많든 적든 엄마들은 ‘엄마’가 되는 순간, 스스로가 완벽한 엄마가 아니라는 생각 때문에 자연스레 아이에 대한 죄책감을 갖게 된다. 더욱이 누구나 아이의 성적에 연연해하며 소리 지르거나, 간섭하는 엄마가 되고 싶지는 않다.
우아하고 세련될 것 같은 프랑스 엄마들은 어떨까? 스웨덴 등의 북유럽과 달리 프랑스는 굉장히 치열한 경쟁사회로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성적 경쟁’에 놓여 있고, 엄마들 또한 제일 관심사가 ‘사교육’일 정도로 부모와 아이는 물론 선생님들까지도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이들의 '긍정 교육법'은 바로 '존중과 기다림'을 핵심으로 한다. 아이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엄마는 옆에서 기다리고 지켜봐주는 것이 최선의 교육법이라는 것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것이 아이의 성적을 포기하자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아이들 스스로 성적을 올리도록 해주는 방법을 제공해주고, 엄마는 한 발 물러서서 지켜봐주고 응원해주는 관계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여기서는 ‘긍정의 힘’을 바탕으로 엄마들이 직접 실천해나갈 수 있는 3단계 교육법을 상세하고 친절하게 설명한다.
특히 ‘프랑스 엄마처럼’은 엄마의 행복이 곧 아이의 행복이며 완벽하지 않아도 충분히 좋은 엄마, 일등이 아니어도 행복한 아이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수많은 프랑스 엄마들은 물론 각종 언론과 교육기관으로부터 ‘프랑스의 가정 문화를 뒤바꾼 혁신적 교육법’이라는 찬사를 받은 프랑스식 ‘긍정 교육법’은 지나친 교육열과 경쟁으로 위축된 아이들에게 스스로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에너지를 제공해준다.
또한 아이 문제로 힘겨운 싸움을 해오며 지쳐 있던 엄마들에게 스스로의 정체성을 되찾고, 스스로 꿈꾸던 엄마의 모습을 찾아가도록 도와줄 것이다.
3. <농부로 사는 즐거움>
저 자
- 프랑스의 시골 마을 오데르빌에서 태어나 80년이 넘게 그곳을 지키며 살고 있는 농부인 폴 베델
한줄요약 책소개
- 농부로 사는 즐거움에 대한 폴 베델 본인의 이야기를 담은 책
그는 한평생 조상의 방식대로 농사를 지었다. 비료를 쓰지 않고 거름을 발효시켜 농사를 짓고, 착유기를 쓰지 않고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우유를 짠다. 무릎을 꿇고 우유를 짜는 그의 모습에 어떤 사람들은 너무 가난하고 안타깝게 보여 눈물이 난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작 폴은 착유기를 쓰지 않는 것은 가난과는 전혀 상관 없다고 한다. 무릎을 꿇고 젖을 짜는 이유는 외양간 곳곳에 소똥이 묻어 있기 때문에 몸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서이며, 착유기를 사지 않은 이유는 착유기보다 자신과 자신의 여동생이 더 젖을 잘 짜기 때문이다.
그에게 있어 농부라는 직업은 자유와 같은 말이라고 한다.
필요한 만큼 일하고, 필요한 만큼 쉬고, 필요한 만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웃들이 우유업체와 계약을 맺고 그 계약에 맞추기 위해 허둥지둥 살아가지만, 그와 그의 가족은 낙농업자의 시간표에 얽매여 생활하지 않는다. 트럭비, 운송비, 세금 등을 더 내기 위해 서너 마리의 소를 더 길러야 했을 것이고, 그렇다면 훨씬 더 많은 일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에게 부란 자신이 하고 싶을 때 일하고, 자고 싶을 때 자고, 배가 고프면 먹는 것이다. 폴은 이미 가지고 있는 밭과 소들로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었기에 밭의 크기를 늘리고 소의 마릿수를 더 늘리는 데 욕심을 내지 않았다. 그래서 이웃들이 비료 가격에 쩔쩔매고 우유 유통업자들의 채근에 시달리는 동안 여유와 자유를 잃지 않고 자신의 속도대로 천천히 살아갈 수 있었다.
폴은 사람들로부터 너무 현대문명의 이기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은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 아니며 누구보다 빨리 기계화됐다고 단언한다. 농사일에 편리하기 때문에 오토바이며 자동차, 트랙터도 이용한다. 하지만 편리하다고 빚을 내 비싼 기계를 사다 보면 어떻게 될까. 빚을 갚기 위해 앞뒤 가리지 않고 무조건 일을 하고, 돈이 되는 작물들을 마구잡이로 심고, 결국 밭에는 낯선 식물이 이상하게 줄기를 뻗으며 자라나게 된다. 폴은 “밭의 땅이 한 줌이라도 상하면 해묵은 상처가 되어 회복하는 데 몇 년이 걸린다”고 말한다. 그의 고집은 기계에 대한 맹목적 거부라기보다는 흙을 고르며 살아온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땅의 지혜였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