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홍길동전>의 홍길동은 류큐왕국의 혁명선구자로 추앙받고 있는 아에야마제도의 이시가키섬의 아카하치와 동일인이라는 설이 있다. 아카하치는 홍가와라(洪家王)라고도 불리었는데, 홍가와라가 홍길동이라는 분석이다.
그리고 고려시대의 삼별초가 제주도를 탈출, 오키나와 본섬의 남쪽 우라소에성(浦添城)으로 가서 류큐왕국을 세운 기초를 다졌다는 연구도 있다 ('삼별초 오키나와로 갔는가' KBS 역사추적 2009년 4월 20일 방송 참조). 2009년 12월1일 오키나와 시립극장에서는 '고국의 고려전사 삼별초'가 공연됐다. 실제로 류큐에서는 고려의 기와 양식과 문양이 동일한 기와가 발견되고 있고, 조선식 산성과 초가집, 칠기, 도자기 등 유적과 유물들이 다수 발견되고 있다.
2.
16세기 日영웅 '홍가와라'와 동일인물 가능성엔 이론
허균의 소설 ‘홍길동전’의 주인공인 홍길동. 그는 과연 실존인물인가, 만약 실존인물이라면 그는 어떤 인물인가?
한국과 일본의 전문가들이 모여 홍길동의 실체를 놓고 토론을 벌인다.
4일 전남 장성의 장성군청 대회의실에서 열리는 ‘홍길동 국제 학술심포지엄’. 설성경 연세대 교수, 홍종필 명지대 교수, 국학연구자 양권승씨(연세대 박사과정), 일본의 다카라 구라요시(高良倉吉) 류쿠대 교수 등 10여명이 참가한다.
그동안 학계에선 홍길동을 둘러싸고 논란이 계속됐지만 홍길동이 실존인물이라는 데는 대체적으로 의견이 모아진 상태. 문제는 홍길동과 일본 오키나와의 영웅 홍가와라(오야케 아카하치)가 동일 인물인가 하는 점.
홍가와라는 16세기초 오키나와 류쿠제국의 봉건세력에 맞서 농민들을 위해 투쟁했던 인물로 알려져있다.
설 교수는 각종 문헌 등에 나타난 행적을 통해 한국의 홍길동과 일본의홍가와라가 동일인물이라고 주장한다. 설 교수에 따르면, 홍길동은 1440년경 장성군 황룡면 아곡리 아치실에서 태어나 1500년경 의금부에 체포됐다가 탈출해 2000여명의 무리를 이끌고 일본 오키나와 류쿠 열도로 망명해 민권운동을 폈던 인물이라는 것.
양씨도 “일본 학자들은 전반적으로 홍가와라가 홍길동이 같은 인물이라는 점을 부정해 왔으나 최근들어 동일인물로 인정하는 경향이 늘고 있다”고 전한다. 홍가와라 족보와 그 곳의 각종 무덤 양식 등을 볼 때 홍길동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양씨의 주장.
그러나 다카라 교수 등 일본측 연구자들은 “홍길동은 한국과 일본 오키나와 간의 교류사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키워드다. 두 인물의 비교 연구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말할 뿐 동일인물일 가능성에 대해서는 유보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홍길동과 홍가와라가 동일인물이라는 주장은 아직까지 추론에 불과하기때문에 학계에서는 좀더 정교한 물증을 확보하는 것이 홍길동의 실체 규명에 중요한 과제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3.
조선시대 허균의 소설 홍길동전의 주인공 홍길동이 당시 집권층에 항거,국내뿐만 아니라 일본 오키나와 열도에서도 의적활동을 벌였던 역사상 실존인물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홍길동은 그러나 조선초기(세종대왕시대로 추정) 전남 장성에서 태어나 서남해안과 전라,충청권,특히 공주를 근거로 의적 활동을 하다가 연산군 6년(1500년) 의금부에 체포됐던 실존인물.
고려 공민왕과 인척관계인 홍상직의 서자로 태어난 홍길동의 출생지인 전남 장성군은 오는 5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소설속의 인물 홍길동을 역사상 엄연히 실존했던 민권운동가로 재조명하는 학술제를 개최한다.
연세대 부설 국학연구원 薛盛璟.梁權承 연구팀이 이 학술제에서 발표할 예정인 논문 `실존인물 홍길동의 생애'에 따르면 그의 조부 홍징은 공민왕의 손아래 동서로 이성계와 함께 왜구를 격퇴하는 공을 세우기도 했으나 역모에 연루돼 세아들과 함께 참시당했다.
당시 참화에서 살아남은 네째아들 홍상직이 전남 장성 아차실(亞次谷)로 피신했는데 이곳에서 서자 길동을 낳게된다.
정실부인에서 난 길동의 이복형 일동은 1420년 전후에 출생,문과에 급제하고 세조의 각별한 신임 아래 지중추부사,상호군까지 지낸 뒤 세조10년(1464년)에 사망했으며 그의 호방한 성격을 당대의 문필가 서거정이 `필원잡기'에 기록하고 있다.
이런 집안에서 자란 길동이 장성 아차실을 떠나 의적으로 나서게 된 가장 큰 동기를 연구팀은 적서차별에서 찾고 있다.
즉 성종때인 1467년 "서얼자손은 문과,진사과,생원과 시험에 응시할 수 없다"는 경국대전의 호전및 형전이 공포됨으로써 서자들의 사회진출이 원천봉쇄 됐는데 홍길동이 이 적서차별법의 희생자였다는 것.
울분을 안고 아차실을 떠난 길동은 경상도에서 학조대사라는 스승을 만나 불교와 도학을 학습한 뒤 충청도,특히 공주 일원을 중심으로 반체제적인 救民,活貧활동을 펼치게 된다.
이를 증명하듯 공주시 사곡면에는 그가 근거지로 활동했을 것으로 보이는 홍길동성이라 불리는 산성이 지금도 남아있으며 조선 세조때 홍길동이 탐관오리와 토호들을 징벌했다는 전설이 남아있다.
그러나 정부군의 토벌작전이 심해지자 홍길동 일당은 무대를 서남해안 및 바다로 옮겨 정부의 양곡을 빼앗아 빈민들에게 나눠주는 의적활동을 활발히 펼치다가 연산군 6년 지리산 근처 임실에서 관군에 붙잡혀 의금부로 압송된다.
그의 반정부 활동에 비춰 극형이 불가피했던 그에게 뜻밖에도 윤리,도덕을 위반했을 경우의 강상죄(綱常罪)가 적용됐다.
의금부가 그를 심문했다는 대목은 正史인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돼 있다.
극형을 면한 홍길동은 곧바로 일당과 함께 출국,겨울 북풍을 타고 오키나와 열도의 최남단 波照間島에 처음 정착한 뒤 `아카하치'라는 이름으로 石垣島,久米島로 차례로 옮겨다니며 활발한 민권운동을 전개했다.
이후 홍길동 일행은 인근 여러 섬을 옮겨다니며 국내에서 처럼 당시 집권층에 항거,의적활동을 벌인 것으로 파악된다고 연구팀은 밝히고 있다.
홍길동이 오키나와에서 의적활동을 했다는 것은 `오야케 아카하치 탄생지'라는 영웅기념비를 비롯,이곳에서 발견되는 여러 유적과 기념비들이 증명하고 있다는 것.
薛교수는 오키나와 여러 유적에서 발견되는 `아카하치' 혹은 `홍가와라'가 바로 홍길동이며 최고우두머리라는 뜻인 <紅家王>,즉 <홍길동 왕>이라는 뜻으로 保武川良,堀川原,保武瓦와 같이 그 표기를 다양하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따라 연구팀은 "소설에서 홍길동이 활빈당을 이끌고 갔다는 율도국이 바로 오키나와"라며 "이같은 국,내외 활동을 미뤄 볼 때 대도적 홍길동은 한국뿐만 아니라 오키나와에서도 활동한 韓日 양국 민권운동의 기수요 민중의 영웅이었음을 확신하게 됐다"고 말했다.
4.
‘아카하치(赤蜂)는 봉건제도에 대해 반항하여 자유민권을 주장하고 섬 주민들을 위해 용감히 싸웠다. 비록 싸움에서는 지고 말았으나 그의 정신과 행동은 길이 후세에 전해질 것이다….’
일본 오키나와(沖繩) 현 최남단 하테루마(波照間) 섬에는 현 교육위원회가 1953년 세운 추모비가 있다. 15세기 말 오키나와의 류큐(琉球)왕국에서 활약했던 오야케 아카하치, 일명 ‘홍가와라(洪家王) 아카하치’를 기리는 비석이다.
이 아카하치가 바로 조선의 홍길동이었다는 주장을 담은 장편소설이 나왔다. 강철근 경희대 한류문화언어학과 교수(사진)가 지은 ‘사람의 나라’다. 소설은 조선을 떠나기로 마음먹은 활빈당수 홍중산(소설 속에서 ‘길동’은 중산의 아명)이 오키나와로 건너가 정착한 뒤 율도국을 세우고 세력을 펼치는 과정을 그렸다.
“홍길동은 연산군 실록에 나오는 실존 인물로, 오키나와에는 수많은 관련 유적과 유물이 남아 있습니다. 류큐왕국의 역사를 기록한 책에 오야케 아카하치에 대한 내용이 나오죠. 이 부분과 조선왕조실록에 ‘홍길동’이라는 이름이 나오다 사라지는 부분을 대조해 보면 시기가 일치해요.”
오키나와 현 구메(久米) 섬에는 구시카와(具志川) 성터가 남아 있다. 강 교수는 “얇은 돌을 기왓장처럼 포개는 오키나와 방식과 달리 자연석을 거칠게 다듬어 쌓은 방식이 홍길동의 마지막 근거지로 알려진 충남 공주시 무성산성과 흡사하다”고 설명했다. 오키나와 야에야마(八重山) 민속박물관에는 조선의 것과 흡사한 농기구도 전시돼 있다.
소설은 활빈당과 백성을 이끌고 류큐왕국 인근에 있는 하테루마 섬에 정박한 중산이 이시가키(石垣) 섬에 율도국을 세운 뒤 구메 섬을 점령하는 과정을 그렸다. 이 부분도 기존 학자들의 연구를 토대로 강 교수가 상상력을 덧붙인 것이다. 강 교수는 “하테루마 섬은 산호초가 많아 큰 배가 정박할 만한 곳이 아니었기 때문에 류큐왕국의 위협을 피하기 위해 첫 정박지로 적당했을 것이라고 추측했으며, 이시가키 섬에 정착했다고 설정한 것은 조선 관련 유물과 유적이 많이 나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강 교수는 1년 반 동안 자료조사를 하고 오키나와를 방문해 관련 유적을 답사했다. 그는 “홍길동이 소설이나 만화영화 때문에 도술을 부리는 전설 속 인물 정도로만 취급받는 것이 안타까웠다”며 “홍길동의 민권 사상은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진보적인 것으로 현대에도 곱씹어볼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5.
◆백만불 미스터리<교양·SBS 2003.10.27 오후 7·05>
16세기초, 오키나와 류쿠 제국에서 봉건 세력에 맞서 농민들을 위해 투쟁했던 홍가와라가 소설의 주인공 홍길동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그 주장에 따르면 홍길동이 건설한 율도국이 일본 오키나와 열도의 이시가키 섬이라는 것이다. 일본 현지 취재로 홍길동의 행적을 추적한다.
6.
관련서적 : 홍길동전의 비밀 / 설성경 / 서울대출판부
소설 홍길동전에서 주인공 홍길동이 정벌해 왕이 된 율도국이 타이완이라고 주장한 책입니다.
작가 허균이 모델로 삼았던 홍길동 역시 실재 존재했던 일본의 민중 영웅 홍가와라와 동일인이었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5.
◆백만불 미스터리<교양·SBS 2003.10.27 오후 7·05>
16세기초, 오키나와 류쿠 제국에서 봉건 세력에 맞서 농민들을 위해 투쟁했던 홍가와라가 소설의 주인공 홍길동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그 주장에 따르면 홍길동이 건설한 율도국이 일본 오키나와 열도의 이시가키 섬이라는 것이다. 일본 현지 취재로 홍길동의 행적을 추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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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서적 : 홍길동전의 비밀 / 설성경 / 서울대출판부
소설 홍길동전에서 주인공 홍길동이 정벌해 왕이 된 율도국이 타이완이라고 주장한 책입니다.
작가 허균이 모델로 삼았던 홍길동 역시 실재 존재했던 일본의 민중 영웅 홍가와라와 동일인이었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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