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처구니'의 어원, 유래에 대한 이야기]
현대국어 사전에서는 ‘어처구니’를 ‘상상 밖의 엄청나게 큰 물건이나 사람’의 의미로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어처구니’가 주로 ‘없다’와만 통합하여 쓰이고 독자적으로 쓰이는 경우가 없어 그 의미를 실제 용례를 통해 확인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다만 19세기 말이나 20세기 초에 나온 사전의 의미 기술이나 20세기 초의 몇 안 되는 실제 용례를 통해
‘어처구니’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의미를 추출할 수 있을 뿐이다.
19세기 말의 “한영자전”(1897)에는 ‘어쳐군이’로 표기되어 나오며,
‘돈을 주조하는 데 쓰이는 놀랄 만한 기계’라고 기술되어 있고,
20세기 초의 “조선어사전”(1938)에는 ‘키가 매우 큰 사람의 별칭’으로 기술되어 있다.
그리고 20세기 초에 나온 소설류에서는 엄청나게 큰 기계를 ‘어처구니 기계’,
엄청나게 큰 굴뚝을 ‘어쳐군이 굴둑’으로 표현해 놓았다.
그리고 어떤 소설에서는 ‘어처구니’가 ‘증기기관’과 같음을 특별히 지적하고 있다.
이로 보면, 20세기 초까지도 ‘어처구니’가 ‘엄청나게 큰 기계나 물건, 그리고 그와 같은 사람’을 지시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토대로 “큰사전”(1957)에서 ‘어처구니’를 ‘상상 밖에 엄청나게 큰 물건이나 사람’이라고 기술한 것이다.
물론 ‘어처구니’를 ‘바윗돌을 부수는 농기계의 쇠로 된 머리 부분’,
‘맷돌을 돌리는 나무막대로 된 손잡이’,
‘잡상(雜像) : 궁궐이나 성문 등의 기와 지붕에 있는 사람이나 갖가지 기묘한 동물 모양의 토우’로 이해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어처구니없다’의 유래를 설명한다.
가령, 맷돌을 돌리려고 하는데 정작 중요한 도구인 손잡이(즉 ‘어처구니’)가 없어
맷돌을 돌릴 수 없게 되어 허탈해짐으로써 ‘어처구니없다’라는 말에 ‘어이없다’는 의미가 생겨났다는 식이다.
그런데 이들 ‘어처구니’에 결부된 여러 의미는 사전적 의미와는 지나치게 거리가 있다.
따라서 ‘어처구니’라는 말에 여러 의미가 있다고 하더라도
‘어처구니없다’라는 말의 ‘어처구니’와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어처구니’의 의미는 어느 정도 드러났어도 ‘어처구니’의 어원은 좀처럼 알기 어렵다.
‘어처군’에 접미사 ‘-이’가 결합된 것으로 볼 수도 있으나,
이 경우에도 ‘어처군’이 무엇인지 확인할 길이 없다.
19세기 말의 어떤 사전에서는 ‘魚採軍(어채군)’으로 쓰고 있으나 이는 단순히 한자의 음을 이용한 표기에 불과하다.
그런데 ‘어처구니’가 지역에 따라 ‘얼척’이나 ‘얼처구니’로 쓰이는 것을 보면
본래 어형은 ‘얼척’에 가깝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러나 ‘얼척’의 어원도 설명하기 어렵다.
‘얼척’에 접미사 ‘-우니’가 붙어 ‘얼처구니’가 되고 ‘ㅊ’ 앞에서 ‘ㄹ’이 탈락하여 ‘어처구니’가 된 것이 아닌가 한다.
‘볼따구니(볼때기)’, ‘철따구니(철딱서니)’ 등에서도 접미사 ‘-우니’를 확인할 수 있다.
20세기 초에서도 ‘어처구니’는 단독으로 쓰이기보다는 주로 ‘없다’와 어울려 ‘어처구니가 없다’
또는 ‘어처구니없다’로 쓰이고 있다.
그런데 궁금한 것은 ‘어처구니’가 ‘없다’와 통합하여 어떻게 ‘어이없다’와 같은 뜻을 갖게 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20세기 초의 ‘어처구니’는 ‘엄청나게 큰 기계나 물건, 그리고 그와 같은 사람’이라는 의미여서
‘어처구니가 없다’나 ‘어처구니없다’는 ‘엄청나게 큰 기계나 물건이 없다’ 또는 ‘엄청나게 큰 사람이 없다’의 뜻이 되어
‘어이없다’, ‘기가 막히다’의 뜻과는 영 관련이 없어 보인다.
이렇게 보면 ‘어처구니’의 어원도 제대로 밝히지 못하고, 또 ‘어처구니’와 ‘없다’가 어울려
어떻게 ‘어이없다’의 뜻을 갖게 되었는지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말았다.
다만 ‘어처구니’가 20세기 초에만 해도 ‘엄청나게 큰 기계나 물건’,
‘엄청나게 큰 사람’을 실제 뜻하고 있음을 확인했을 뿐이다.
(출처: 조항범(충북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정말 궁금한 우리말 100가지”,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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